1099km

마침내 결정을 내린 것은 결국 아침이었다. 

무작정 나서서, 시동을 걸고 출발을 했다. 무엇을 할지, 어디에 있을지, 누구를 만날지, 언제 돌아올지 같은 생각은 다 던져두고, 그냥 무작정 떠나보고 싶었다.

카메라와 옷, 담요와 안경들, 지갑과 열쇠.

출근시간의 교통체증에도 마냥 웃음이 나왔던 것은, 아마도 스스로도 어이없을 정도로 대책없이 나섰기 때문이겠지. 그런저런 여유를 부리며, 올림픽대로의 끝자락에서 핸들이 고속도로로 올라간다. 아. 

겨울철, 스키장에 가본 경험때문일까. 몸이 자연스럽게 강원도로 향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문막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었을때는 강릉휴게소였다. 커플과 일행들로 가득한 휴게소에서 왠지 웃음이 나온다. 어색함을 즐기는 기분. 일종의 여유. 

속초와 동해의 갈림길에서, 누군가가 이야기했던, 옥계가 떠오른다. 해안도로가 좋다고 했던가. 눈앞에 보이는 표지판을 따라 옥계로 가본다. 톨게이트의 인상좋으신 아주머니가 자세히 설명해주신다. 좌회전, 좌회전, 우회전. 짙푸른 녹음을 눈에 껴안으며 천천히 달려가본다. 

아. 아..

방금전까지 바라보던 짙푸름과는 또다른 짙푸름이 시야를 잠식한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만나서 천천히 연해지며 에메랄드색을 띄다가 투명해지는 자연스러움. 바다다. 아. 바다다. 어라. 바다다. 정말, 투명한 바다다. 아. 바다다. 인적이 드문 바다다. 아. 바다다. 너무도 투명한 바닷물에 혹해서 맛을 본다. 짜다. 아. 바다다. 분명히 소금기를 담고 있는 그 바다다.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발을 담가본다. 시원하다. 서해의 포근함과는 다른 청량함이다. 마냥 웃음이 나온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머릿결 사이로 소금기를 선사할때쯤. 다시 출발해본다.

그러니까, 해안도로다. 

드문드문 보이는 낚시꾼들의 한가로움을 끼고, 내리쬐는 태양빛에 달구어진 몸을 바람으로 식히며 구불구불한 길을 조금씩 기억해둔다. 바위사이로 보이는 맑은 바닷물들이 찬란함을 빛내는 순간. 차는 멈추고 만다. 사실 두렵다. 이걸 담아낼 수 있을지. 속는 셈치고, 셔터를 눌러본다. 어차피 집에 돌아가기전에는 확인을 못할테니 ‘에라 모르겠다’ 라고 되뇌이며 열심히 눌러본다.

그렇게 서다 가다를 반복하다가 어느덧 그 유명한 곳에 도착했다. 아무런 감흥도 생기지 않는다. 아. 있을 곳이 못되는구나. 뻔한 장사속이 맑은 바닷물만큼이나 들여다보이는 가게들을 뒤로 하고 길을 돌아간다.

아. 분명히 바닷가였다. 맑은 바닷물을 바라보며 청량함을 즐기던 것이 바로 직전인데, 매미소리가 울창하게 피어오른 짙푸른 산속이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오르락 내리락한다. 아. 산이다. 어라 산이다. 분명히 산이 맞다. 기찻길도 보이고, 논밭도 보이지만, 분명히 산이다. 그런데 방금전은 바다였다. 아. 이것이 강원도이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기차길 밑 굴다리 옆으로 자그마한 공간이 보인다. 비상등을 켜고 차를 일단 세워본다. 

한참을 굴다리에서 놀다가 문득 배가 고파져서 다시 출발을 하려는데, 자세히 보니 차도 배가 고프다고 한다. 아. 나만 배고픈게 아니구나. 일단, 녀석의 배를 채워줄 주유소를 찾아본다.

왠지 낡아보이는 주유소지만, 인상 좋은 아저씨가 나오신다. 적혀있는 숫자를 보고 놀란다. 놀란만큼 배를 채워준다. 그리고, 묻는다. 묵호항이 좋을거라고 하신다. 일단 가보자.

어머나. ‘그 유명한 묵호항’이란다. 어시장이 보인다. 저기다. 펄떡이는 횟감들과 잘 말려진 오징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광어 한마리와 오징어 세마리를 골랐다. 조그마한 쥐치와 뽈락은 덤이다. 조심조심 들고 차로 와서 초장을 열고 한점 찍어서 입에 넣어본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운전을 해야함이 안타까울 뿐. 흔히 말하는 ‘스끼다시’는 필요없었다. 광어와 오징어로 배를 불리고 천천히 남쪽으로 내려가본다. 

뭔가 멋진 백사장이 보인다. 그런데, 끝이 보이질 않는다. 아. 이 곳이 그 유명한 망상해수욕장이구나. 멋진 건물들과 꽤나 넓은 캠핑장에 잘 정돈된 주차장이 보인다. 넓은 백사장을 찍을 요량으로 들어가보지만, 들어가는 순간 만난 주차요원의 눈에서 보인 왠지모를 기분나쁨에 차를 돌리고야 만다. 

더 내려가본다. 눈에 익은 단어가 들어온다. ‘추암’ 최근 흥미를 갖게된 다이빙의 명소라고 불리는 곳이다. 호기심이 발동한다. 주저하지 않고, 머리를 돌렸다. 논두렁의 경운기 할아버지께 가볍게 인사를 하고 계속 들어가본다. 그렇게 꽤나 들어갔을때 쯤 작은 굴다리가 보인다. 설마했는데, 그곳이 입구란다. 들어가니, 넉넉한 모습을 한 주차요원이 맞이한다. 주차비의 차이에 놀라서 물어보니, 참 간단하게 웃으며 대답하신다. 거긴 사람이 많잖아요. 아!

주차를 하고, 백사장으로 걸어나가본다. 푸른 물에서 노는 사람들 사이로 슬리퍼를 벗어 손에 들고 천천히 걸어본다. 파도가 발목을 적시는 사이, 문득 외롭다는 걸 느꼈다. 거리가 주는 간절함에 같이 있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겹쳐진 것이겠지. 어느새 귀여운 꼬마녀석 하나가 따라서 걷는다. 슬쩍 살펴보고 모른채 걷는다. 자세히 보니 걷는 폼도 따라하고 있다. 그렇게 한바퀴 휘이 돌고, 살짝 웃어준 다음, 그곳을 떠났다. 무척이나 있고 싶었던 곳에서 떠나려니 발이 안떨어지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 생각없이 남쪽으로 내달리다 보니, 어느새 널찍한 도로 위다. 지도를 살펴보니 동해대로란다. 고속도로인줄 알았는데 국도인 모양이다. 기왕 올라온거 시원하게 달려본다. 왼쪽에는 푸른 바다가, 오른쪽에는 짙은 녹음이 펼쳐진 풍경은 꽤나 뇌리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익숙한 지명이 읽혔다. 울진. 아버지가 종종 출장을 다녀오시던 곳이다. 원자력 단지로 발길을 옮겨본다. 잘 정돈된 건물과 정원이 눈에 들어오지만, 왠지 셔터가 눌리진 않는다. 고개를 돌리니 구름사이로 햇살이 내려오고 있다. 왠지 셔터가 잘 눌렸다. 그때쯤, 울산에 친구녀석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얼굴을 보고싶어서 전화를 했더니, 와서 자랜다. 

실수였다. 울진과 울산은 서울에서 대전보다도 멀었다. 열심히 달리다 보니, 온통 컴컴하다. 휴게소가 있는 고속도로와는 달리 널찍한 국도는 중간에 쉴 곳도 마땅치않다. 그냥 열심히 달릴 뿐이다. 배고프다고 투덜대는 녀석에게 시원하게 증발되는 기름을 먹여주고, 아저씨에게 여쭈어보니, 25분 정도 걸린다고 하신다. 아! 다왔구나! 하며 생각해보니, 이곳은 경주다. 설마 울산과 경주가 붙어있겠어? 라고 의심했지만, 10분정도 지난 뒤, 울산과 경주의 경계선을 넘게 되었다.

회식자리에서 내 핑계를 대며 빠져나온 친구는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물론, 불쑥 전화해서 불러내는 것도 여전하지만, 그걸 넉살좋게 받아주는 거도 여전하다. 아마도, 아버지와 술한잔 해야할걸? 이라고 이야기하는 녀석과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향한다. 

10년지기의 아버님께서는 호탕하신 분이셨다. 어머님이 담그신 정말.. 정말.. 정말 맛있는 게장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피로가 몰려온다. 자신은 일찍 나가야하니 신경쓰지 말고 푹자라는 아버님의 배려를 몸에 안고, 친구와 재잘거리다 잠이 들었다. 친구녀석의 말을 듣자하니, 코를 골았댄다. 피곤하긴 피곤했던 모양이다.

일찍 잔 탓일까. 의외로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다시 여정을 시작한다. 한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는 부산이 목표다.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 가서 인증 사진을 찍어오라는 애인님의 요구와 교수로 일하는 선배들이 어찌 사는지 궁금해진 것이 발길을 그리로 돌리게 된 이유겠지만, 사실 궁금했다. 부산이라는 도시가.

부산 사람들의 운전이 거칠다는 사실은 익히 들었던 바라서, 왠지 조심스러웠지만 막상 같이 운전을 해보니 그렇게 거칠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교통체증이 없었던 시간이라서 그랬을까? 왠지 모를 섭섭함을 안고, 가다보니 선배들이 일하는 학교가 보인다. 점심 약속이었지만, 일단 들어가본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의 환영을 받으며, 연구실에 가본다.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이고, 같이 일하는 연구생의 작업을 살짝 도와주고 나니 점심시간이 왔다. 돼지국밥과 밀면 중 하나를 고르라는 선배의 말에 돼지국밥을 선택했다. 사소한 배터리 고장을 전문가의 손에 맡기어 해결한 뒤, 당당하게 돼지국밥집으로 갔지만… 왠걸, 여름 휴가시란다. 작전을 변경하여, 밀면집으로 향했다. 사실, 서울에서 먹어본 밀면은 딱히 감흥이 있는 음식은 아니었기에 큰 기대를 안했지만, 역시 본고장은 본고장인가 보다. 육수가 가진 깊이가 다르고, 무엇보다 시원함 사이로 감도는 감칠맛이 혀끝을 맴돌았다. 

선배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애인의 모교로 향해 사진까지 찍고나서 국제시장이란 곳이 생각났다. 오래된 시장. 없는 것이 없다는 그 곳을 보는 것이, 왠지 해운대나 광안리보다 매력적이란 생각에 주섬주섬 찾아가본다.

복잡복잡한 사이로 간신히 주차를 마치고, 탐험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동대문일대와 남대문일대를 섞어놓은 듯한 시장에 명동을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외곽지대를 가진 동네였다. 이럴때는, 파인더를 통해 바라보는게 좋은 법이다. 안경을 통해서는 보기 힘든 제한된 시야가 가져오는 ‘다른 보기’는 언제나 즐거운 법.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고 바라보니, 군데군데 꽤나 괜찮은 의미들이 도사리고 있다. 하나 하나 잡아나가며, 땀을 흘리고 있을때, 옷이 두어벌 눈에 들어온다. 기념품을 산다는 생각으로 가벼운 흥정을 하고 나니, 태풍이 오고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아. 늦게, 혹은 내일 출발하면 늦어지겠다는 생각에 여행이 끝이 나버린다. 남은 일은 귀가다.

먹구름이 쫓아오고, 지친 몸이 거친 빗줄기와 화물차들이 만들어내는 난기류의 난이도에 적응할 때 쯤이 되니, 집이다. 미터기를 보니 099라고 찍혀있다. 

그렇게 1099km의 짧은 여정이 끝이 났다. 그 무엇으로도 얻지 못할 마음의 여유라는 녀석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