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밤은 참 많은 것을 남긴다.

사막을 건너온 여행자의 기분, 하이얀 평원을 달리는 붉은 빛깔의 강, 대책없이 잠겨드는 아늑한 늪, 그 사이에서 번득이는 찰나의 집중, 포근한 사자의 품과 푹신한 표범의 다리, 살짝 야릇하게 풍겨오는 바람의 손길, 멀리서 날아와 놀아달라고 보채는 오랜 친구, 그 친구를 가리는 밝디 밝은 처연함의 결정체, 따각거리는 기계식 키보드가 울리는 사무실의 정취, 천천히 밝아오는 어스름의 한기, 어렴풋이 보이는 발빠른 사람들의 샴푸냄새, 그 와중에도 가장 즐거운 일은 밤의 끝자락에서 밤을 즐기는 일.

밤은 참 많은 것을 남기지만, 곧 사라지고, 언젠가 돌아온다. 마치 남긴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