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것인가? - 레닌에 대한 추억.
2007년 가을학기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안효상 선생님의 ‘사회주의의 역사’ 수업을 들을때였고, 우연히도 발표를 맡게된 텍스트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였던 것 뿐이었다. 사실, What is to be done?이란 문장을 해석해보고 나서는 저 제목 하나때문에 막연히 레닌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던지라 마냥 즐겁게 텍스트를 읽어내려갔다.
왜, 내가 번역했던 그 문서의 그 부분에 ‘What is to be done?’ - 무엇을 할 것인가? - 라는 소제목이 붙어있었는지, 그리고 그 말은 벌써 몇년째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는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던 순간.
공부가 모자란 상태에서 어떻다고 정의를 명확하게 내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고, 만들어낸 해석이 엉뚱한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도 익히 알고 있는지라 조심스럽지만, 어떤 시점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되뇌임은 그 어떤 맹세나 문구보다 강력한 효과를 가져오는 것도 사실이다. 혹은, 엄청난 좌절을 가지고 오던가.
다시 한번 되뇌여 본다.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