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ootdog: 여자는 내가 더 사랑하는 사람 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시나요?
위의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사랑하는 사람이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순간, 많은 경우 자기 자신을 찾기 시작하는 지점이 되니까.
@ifootdog: 여자는 내가 더 사랑하는 사람 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시나요?
위의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사랑하는 사람이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순간, 많은 경우 자기 자신을 찾기 시작하는 지점이 되니까.
응. 사실은 알고 있던 이야기였어. 당신과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도, 그리고 아무리 뒤로 물러서더라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사실은 알고 있었어. 다만, 믿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이지.
응. 사실은 알고 있던 이야기였어. 딱히, 시류같은거 모르고 그냥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나름대로 써버리면, 블로그는 섬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사실은 알고 있었어. 뭐 쓸쓸한 블로그이긴 하지만, 그래도 종종 와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다행.
응. 사실은 알고 있던 이야기였어. 다소 과격하고, 쉽게 친해지는 것처럼 보이는 성격이 실은 예민하고 상처 잘 받는 스스로에 대한 일종의 보험이라는 사실을 사실은 알고 있었어. 어느 쪽이 보험인지 애매해지긴 했지만.
응. 사실은 알고 있던 이야기였어.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
지나간 관계들을 돌이켜보면, 어떤 이야기를 회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화를 내기도 했었고, 어떤 경우에는 끝까지 이야기를 시도했었고, 어떤 경우에는 회피를 묵인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결국 필요한 건, 가능한 모든 이야기를 소통하는 누군가. 그리고, 소통을 위해 변할 줄 아는 그 누군가. 소통의 희열 사이로 같이 춤출 수 있는 누군가.
크리스마스가 연휴인 관계로 본인은 느닷없이 (지난 5월에 그랬던 것 처럼) 후다닥 일본이나 다녀올까 싶었으나, 항공권이 없는 관계로 취소. 배를 타고 갈까 했으나, 혼자 배에 갖혀 오래 있으면 지루할 것 같아서 이것도 취소. 결론적으론 한국. 그것도 서울에 짱박혀서 지내야 한다는 현실. 아 이 정도면 충분히 고독의 크리스마스가 될 조건 자체는 완벽.
12월 초에 소개팅한 아가씨에게는 미안할 정도로 연락을 자주 못하고 있는데, 이유는 바쁘다는 것. 아 진짜 바쁨. 월화금금금금일도 정도가 있어야지. 결국 이번주 목-금 연타로 회사 지각. 부팅이 안됨.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피로에 의해 물집이 잡혀있던 입술이 복구되었고, 한참 물 올랐던 약속의 일정도 잠잠해지는 추세라는 점. 이라지만, 오늘 음악하는 인간들 모여서 송년회하자고 하고, 다음주 역시 월수 밴드에 화요일 약속. 목요일은 이브, 금요일은 누군가의 생일이라고 우겨지는 하루.
그나저나, 영화를 못 고르고 있다. 계속 늦어지고 있어서 미안하긴 한데, 당최 제시하신 영화를 못 고르겠다. 그냥 아바타나 볼까.
날은 춥고, 고독은 씹으니 맛이 더 나고, 깊게 빠져들 일들은 많고, 스트레스는 증폭중이고. 날카로워지는 신경을 잡자니 힘들고 안 잡자니 귀찮다.
아.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녀석들이 발목을 잡지 않는 한 그냥 얌전히 처박혀서 게임이나 할까 생각 중. 의외의 수입도 생겼고 뭐. 인생 그런거지 뭐.
프로그래밍, 음악, 철학, 수학, 물리학, 미술, 문학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들을 관통하는 기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인생은 초끈이론. 현상은 다르더라도, 각각의 분야들이 서로 시너지효과를 내려면 아무래도 인생은 초끈이론. 응. 초끈이론.
이론물리학에서 논의되는 것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인생은 초끈이론. 사람마다 각자 다 다르겠지만, 왜 사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있다면, 인생은 초끈이론. 응. 초끈이론.
아. 인생은 초끈이론.
당신의 근원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의 근원은 무의미로 의미를 만드는 속도와 기민함. 지반과 경계를 무력화하며 달리는 피곤한 속도와 기민함.
아. 인생은 초끈이론.

Andy Warhol Lenin, 1987- via Brooke Alexander Gallery
고백하자면, 앤디워홀이란 사람은 궁금한 사람이었다. 그의 행적이나 성과? 는 압도적인 것이었고, 그 유명세만큼이나 남은 이야기는 극과 극을 달렸으므로..
나 스스로가 대중성과 소비문화에서 떨어져나올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아도 그의 그림은 일반적인 천박함과 대량생산에서 멀찍이 떨어져있었다. 참 다행이었다.
파괴적으로 접근해서, 파괴적이지않은 재해석을 만드는 그의 순간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은 실크스크린에 기반한 기민한 작업은 아니었을까?
그 기민함에 담겨진 탈주의 기록은 수많은 변주로 형태화되어 그의 주변에 남았고, 그의 주변 역시 그에 부응한 탈주로 그에게 남았다.
과연 그러한 지반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그러니까. 내가.